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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6주 여행

크라코프 셋째날 - 아우슈비츠, 비르켄아우

어제 따뜻한 음식을 갑자기 먹어서인지


근육이 이완되어 두통이 몰려와 오전 내내 숙소에서 앓았다


그리고 오후에는 기운을 차려서


이번 여행의 메인 목적지 중 하나인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간다


사실 이거 보려고 나 크라코프까지 온 거다



여기가 크라코프 중앙역


백화점, 버스터미널, 기차역이 모두 한 건물 안에 있어서


게스도 있고 맥도 있고 스타벅스도 있고


앓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스타벅스에서 커피랑 샌드위치로 점심을 대충 때웠다



저 백화점 건물을 지하로 통과해서


뒤쪽으로 나가면 버스 타는 곳입니다


모르시면 앞사람 따라가시거나


표지판 따라가세요 충분히 찾아갈 수 있는 구조임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는 버스는 0층에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아우슈비츠의 현지 이름이 오슈비엥침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오슈비엥침은 아우슈비츠가 위치한 크라코프의 위성 도시 이름이다


비엘리치카처럼 크라코프에서 약 60킬로미터 거리


투어는 가능한 한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할 것을 추천


예약은 이리로


https://visit.auschwitz.org/


입장료는 무료지만 가이드 투어는 가이드 팁이 있기 때문에 유료


영어 가이드는 인기가 좋아서 표 금방 사라짐


가이드 없는 자유관광은 아침 일찍 아니면 저녁 늦게밖에 없는데


전 저녁 늦게 갔지만 가능하면 아침 일찍 가세요


내가 오후 4시 예약이었는데 정말 대박 후회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폴란드 시골


2차대전 당시에는 수 많은 유태인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끌려갔던 바로 그 길


크라코프에서 오슈비엥침까지는 버스로 1시간 30분 정도 거리다


4시 투어면 아무리 늦어도 2시 이전 버스를 타야 한다


사실 더 일찍 가서 미리 비르켄아우를 먼저 보는 방법도 추천



도착.


남들 가는대로 다 따라가면 거깁니다


어차피 오슈비엥침 시골까지 외국인이 오는 이유는 하나니까


입장은 8시 -7시 까지였나 하지만


더 늦게 나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게이트는 10시까지 열어놓음


그리고 저기에 해 질때까지 있을 생각 마요


생각보다 아우슈비츠가 넓어서 보는데 시간이 꽤 걸립니다



아우슈비츠의 보존과 전후 유태인의 복구에


비용을 기부하고 도움을 준 나라들에 대한 감사패


영어, 히브리어, 폴란드어로 써 있다


바티칸, 이스라엘, 룩셈부르크, 사이프러스 등


생각지 못한 나라의 이름들도 보인다




유태인 수용소는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고


가장 악명높은 곳의 이름이 아우슈비츠였다


아우슈비츠 티켓을 끊으면 두 군데 수용소를 볼 수 있다


초기 수용소였던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그리고 그 아우슈비츠를 확장해 유태인을 '보관' 했던 비르켄아우


아우슈비츠에서 비르켄아우까지는 버스로 5분 거리이고


무료 셔틀버스를 운영한다


이 비용들은 모두 독일 정부가 현재까지 지불하고 있다


비르켄아우는 아우슈비츠의 3배 넓이라 대충만 둘러봐고 2시간 넘게 걸림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코스는 아침 일찍 예약하고 가서 아우슈비츠를 보고


나와서 비르켄아우를 보고 1,2시쯤 오슈비엥침을 떠나는 방법이다


그럼 3시-4시쯤 크라코프로 와서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다


늦게가지 말아요 경험자 말이에요 내말들어요ㅠㅠ



일단 비르켄아우로


아우슈비츠에서 소화할 수 있는 유태인이 한계치를 넘어서자


나치 정부는 허허 벌판에 아무것도 없는


비르켄아우 수용소를 세우고 여기까지 기차선로를 뚫었다


이 기차를 타고 들어온 사람들은 곧바로 '선별' 되어


여성, 어린이, 노인은 곧바로 가스실로


체력이 있는 남자는 끝나지 않을 무의미한 노동에 투입되었다


각종 영화나 드라마는 수용소 내부의 생활을 말해주기 때문에


꽤 많이 살아남은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매 기차의 생존자는 15% 가 되지 않았고


전쟁 말기에는 선별작업 없이 곧바로 가스실로 가는 경우가 잦아졌다




패전을 짐작한 나치가 폭파하고 달아난 가스실 자리


그때 당시의 구조와 사진이 설명과 함께 설치되어 있다


여기서 30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처음 아우슈비츠 간다고 했을때 가면 울 수도 있다느니


너무 슬프다느니 그런 얘기를 엄청 들어서 정신무장 단단히 하고 갔는데


슬프다기보다는 가슴이 먹먹해지고 뭔가 꽉 막히는 느낌이다


무섭고 두렵다




실제 유태인들이 머물던 숙소


침대가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이 공간에 100여명 가까운 사람들이 3층 침대에 나뉘어 살았고


난방기구라고는 저 가운데에 보이는 화덕이 전부였다


화장실고 조리대도 아무것도 없다



버스를 타고 아우슈비츠로 돌아옴


나치가 폭파시킨 비르켄아우와는 달리


아우슈비츠는 그때의 자료와 건물 형태가 대다수 남아있었다


저 사진 속의 눈동자들을 마주하는 순간


그냥 말문이 막히면서 소름이 돋는다



초기에는 이렇게 번호를 옷깃에 붙이고 사진을 찍어


신원을 식별했다 하지만


저 사람들은 순식간에 살이 빠지고


옷가지가 뒤섞이면서 이 방법으로는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건장한 남성도 30키로 미만의 해골이 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번호를 사람들의 팔에 새기기 시작했다



악명높은 줄무늬 수영복


내가 찍은 사진들은 아우슈비츠의 처참함을 반도 표현 못 한다


정말 끔찍한 자리, 유품, 인체조직들은 사진촬영이 금지였고


사실 사진찍고 싶은 마음도 점점 더 사라져갔다


난 너무 무서웠다 여기서 빨리 나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면 보고 기억하는 게 후대가 해야 할 일이다



여기가 마지막으로 남은 악명높은 가스실.


다른 가스실은 전부 손상되거나 폭파된 상태이지만


여기는 그때의 모습 그대로 남았다


난 4시 입장을 예약했는데 여기 왔을 땐 이미 6시가 다 되어 가고


단체관광객은 다 빠진 상태고 슬슬 해도 져 가고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저기는 혼자 못 들어가겠어서


앞에서 기다리다가 가족 단위 여행객이 오길래 섞여 들어갔다


가스실 벽에 남은 사람들의 손톱자국 평생 잊지 못할거다



구경 다 끝내고 나오니 7시 버스타고 크라코프 도착했을 때는 8시 반 넘은 시간


이미 해는 져 있었고 빨리 배부터 채우고 숙소 들어가야지


계속 아우슈비츠를 일찍 가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이래서다


4시 이후 타임에 가면 안그래도 무서운 장소에 해는 지고 어둑어둑 사람은 점점 없어지고


그 끔찍한 아우슈비츠에 마지막으로 혼자 남는 재수없는 경우가 생길수도 있다


또 그 근방에는 뭘 먹을 곳이 없는데


다 구경하고 크라코프로 돌아오면 이미 시간이 늦어 저녁 처리하기도 애매해지고


사람이란 밤이 되면 기분이 가라앉는 짐승인데


그런 광경을 보고 바로 숙소로 들어온 들 기분좋게 잘 수 있을리가 없다


난 정말 굵은소금과 수면제가 간절했다.



아우슈비츠는 내 평생에 한 번 봤으니 이걸로 됐어


난 두번 다시 여기 돌아오고 싶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