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건 네팔에서건 동남아에서건
제일 보고싶었던 우리집 똥개.
어느덧 16살.
사랑하는 우리집 막내.
처음 왔을땐 요만했음. 진짜 이뻤음.
형제들 중에서도 제일 작게 태어나서
파보 걸려 죽는다는 걸 병원 데려가서 돈 쳐들여 살려내고
이때 이름은 찌루였는데 루키로 개명.
진짜 이때는 손바닥만했음.
비달사순 잘잘 흐르던 리즈시절.
울 가족 선산이 있던 강화도에서.
날짜 봐라 2004년.
이게 벌써 10년 전이네.
이렇게 형아 괴롭히기도 하고
투엑스라지 옷을 사왔더니 쫄티가 됐다.
저 원망스러운 표정 보소.
너 내일부터 다이어트.
헤어밴드 목에 걸어주면 목걸이.
식탁은 먹은 뒤 빠르게 치워야 함.
안 그러면 올라와서 다 먹어치움.
개 나이 열 살이며 사람이 된다.
잠도 사람처럼 잔다.
허리 안 아픈지 모르겠다.
유학가기 전.
점점 더 사람이 된다.
유학가는 내내 얘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음.
이렇게 요리하는게 참견하기도 하고.
니꺼 없어 내려가.
표정도 사람이 된다.
마치 안 주면 울 것 같은 저 표정.
기분 좋으면 웃음.
이렇게 털이 북슬북슬해지면
미용실로. 털 장난 아니게 빠진다.
지금은 노령견이라고 미용실에서도 안 받아준다.
젊은 강아지만 취급해주는 더러운 세상.
할머니네 집에 얹혀살던 시절.
내가 집에 닥치고 들어왔던 이유는 얘 때문임.
저 퉁퉁한 궁디.
우리 루키의 매력포인트 궁디.
나이 들면 맨 바닥에서 자면 입돌아가...
베개도 있어야 하고 이불도 덮어야 하고
니가 이러고 자면 난 어디서 자냐.
중국 이민가기 전.
배 태워 데려가고 싶었다.
이때만 해도 나이가 열살.
중국 데려갔으면 유학하는 시절 내내
그렇게 걱정되고 가슴 아프고
지금까지도 혼자 둔 게 미안하지는 않을텐데.
내 이불 들추고 들어가 있다.
사랑해.
짜리가 죽은 뒤에 가장 위로가 됐던 말은
맘껏 울어, 좋은데 갔을 거야 이런 말이 아니라.
개들에게서 상위 1%는 처음 입양된 뒤
가족이 바뀌지 않고 평생 한 집에서 산 개....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부디 너와 나의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내가 만들어준 오늘 하루에 네가 행복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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