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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살리기

한국에 돌아와서 셋 - 마지막 후기

 한국에 돌아온 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

 

이제서야 생체리듬이 좀 한국에 적응된 기분이다.

 

아직까지 땅이 흔들리는 기분도 그대로이고,

 

모든게 빠르게 돌아가는 서울에 익숙하지가 않지만.

 

정말 모든 걸 많이도 배웠다.

 

 

네팔에 들어가던 날.

 

단 하나도 변하지 않았던 트리부반 국제공항.

 

당일은 몰랐지만, 앞에 걸어가고 있는 저 분이

 

나중에 친해진 Smile Back Nepal의 최민욱 활동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몰라 바싹 쫄아 있던 내 모습.

 

지금 생각해 보아도, 소속 없고 돈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맨몸으로 네팔에 들어갔던 건 정말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여행다닐 때에는 보지 못했던

 

네팔의 빈민들.

 

썩은 물로 양치를 하는 아이들.

 

네팔은 2004년에 왕정이 붕괴된 뒤 작년에야 첫 총선을 치른

 

정치적으로 불안한 나라이다.

 

언제고, 정치가 불투명하면 힘들어지는 건 국민들이다.

 

가진게 없어서 지진 피해가 없던 사람들은 지원 대상에서 배재되었다.

 

이번 네팔 활동을 통해서 배웠다.

 

내가 아니라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무엇이 도움이 될 지 고민할 것.

 

나 좋자고 상대방을 거지로 만드는 구호는 절대로 하지 말 것.

 

 

 

한숨이 나오던 순간들.

 

처참하게 부서진 짱구나라연과 사쿠.

 

NGO도 결국에는 마케팅이 필요하고

 

네팔 대지진은 전 세계 NGO들에게는 정말 좋은 마케팅용 떡밥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진 피해가 심한 지역으로 먼저 달려갔고

 

피해가 심하지 않은 지역은 또 지원을 못 받는 사태가 발생했다.

 

피해가 심하지 않다는 건 상대적이다. 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신두팔촉에서는 2천명이 죽었지만 사쿠에서는 120명이 죽었다.

 

이 120명은 사쿠라는 마을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한다.

 

이래도 피해가 심하지 않아 보일까?

 

숫자는 장난질이다.

 

돌아올 즈음에는 정리가 되어 있었던

 

뉴 로드 근처의 한 민가.

 

벽돌이 그대로란 말은 사건 당일 안에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다.

 

저 벽돌을 헤집었다면 거기는 사람이 깔려 구조를 진행한 집이란 말이다.

 

자연재해에 대한 모든 동물이 가진 원초적인 공포.

 

지진이 다시 와도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그 공포.

 

이번에야 겁도 없이 뛰어들었지만,

 

다음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선뜻 내가 가겠다고 말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고,

 

네팔에 간 걸 절대로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 경험 전체가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한 것을 알려 주었다.

 

이 인간의 끝이 어떤지 겪어보고 싶으면,

 

재난 이후 열악하고 불안한 상황에서 딱 한 달만 같이 살면 된다.

 

그리고 네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또 신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래도 자라나고

 

삶은 그래도 계속된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

 

물론 내가 할 일이 가면 생긴다.

 

인력이 부족한 곳에서는 당장 손 하나라도 무조건 생긴다.

 

뜻이 있으면 길은 열린다.

 

그 일을 얼마나 키워서 하나의 프로젝트로 진행하느냐는 개인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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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젠 네팔에 언제 어떻게 가더라도

 

맞아줄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다.

 

당분간은 한국에서 좀 쉬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네팔에 다시 돌아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