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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살리기

<네팔한인회 요청 원고> 네팔에 살려면 네팔어를 배워야 한다

 

 

 

 

네팔에 있는 동안 이것저것 챙겨주신

성주형님의 아내분 되시는 미르디디.

내 네팔어는 참새 눈물이고 미르디디의 한국어도 비슷한 수준이라

의사소통이 어려웠던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이 사진이 올라가진 않겠지만 어차피 이 글 저작권은 나한테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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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지인은 약 5년 전 우연한 기회에 네팔에 발을 디뎠다.

당시 지인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때문에 네팔어 공부에 더더욱 정성을 쏟았다.

네팔인 친구들을 사귀려 애썼고, 일을 할땐 한국어나 영어보다는 네팔어를 쓰려 노력했다.

그리고 이번 지진 자원봉사를 갔을 때, 네팔어는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네팔어를 한다는 것은 이 사람이 네팔에 오래 살았다는 증명인 동시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이야기를 이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다는 의미이고,

또 억양, 발음, 어투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차이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통역을 끼지 않고도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은 상대방이 외국인이더라도 신뢰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지인은 다시 네팔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인간관계와 개인의 능력을 떠나서 네팔어를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무엇보다도 영어를 못 하는 상황에서는, 네팔에 정착하는 것이

언어적인 장벽이 적고 빠른 적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여행이 아니라 거주를 목적으로 네팔에 왔다면

네팔어를 꼭 배워야 한다는 말의 반증이기도 하다.

분명 네팔어를 하지 못해도 네팔에서 생활을 할 수는 있다.

영수증은 영어로 나오고, 터멜에 가면 영어나 중국어로 충분히 대화가 가능하고,

대부분의 큰 식당들은 영어로 된 메뉴판을 함께 제공한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외국인 친구'가 아닌 '친구'로 인식되는 것은

언어적인 장벽을 넘어야만 가능해진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서, 기분이 정말 좋지 않거나 힘든 일이 있을때,

그 감정을 한국어가 아닌 영어나 네팔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일단 감정에 앞서 두뇌 속의 번역기가 먼저 작동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네팔 사람들에게 한국인과 똑같이

힘들 때에도 기댈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고

또 그만큼 신뢰를 얻고 싶다면 네팔어는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로, 네팔에서 앞으로 거주한다는 말은

대상이 한국인이든 네팔인이든, 아이템이 유형이든 무엇이든

결국 네팔에서 앞으로 생업을 유지하게 된다는 말이다.

계약서의 미묘한 한 글자, 거래 대상의 미묘한 어투 차이 하나에서

발생하는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어떤 업종에서든 경쟁 상대에게 밀릴 수 있는 확률이 커지고

또 불리한 입장에 서거나 사기를 당하는 등의 위험 역시 증가한다.

대기업의 경우, 진출하고자 하는 국가의 언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을 뽑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단지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이 비교적 그 규모가 크기 때문에 많이 보이는 것이지,

한국인의 규모가 적은 네팔이라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사업적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현지 언어는 반드시 필요하다.

대기업조차도 현지 언어를 하는 한국인을 뽑는 와중에,

그런 사람을 뽑을만한 경제력이 되지 않는다면 내가 배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동시에, 언어를 배운다는 말은 그 언어에 담겨있는

상대 국가의 문화와 전통, 역사를 배운다는 말이기도 하다.

네팔어를 하지 못하고 네팔을 이해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네팔어를 하지 못하면 네팔 음악을 이해할 수도 없고,

네팔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도,

네팔 신문을 읽을 수도 없고 네팔어 사이트도 이용할 수 없다.

영어로 된 신문이 있다지만 소수일 뿐이고,

결국은 누군가의 생각이 가미된 통역을 이용해야 한다.

2차적으로 걸러진 정보만을 얻는다면 당연히 내 생각이 커질 공간은 줄어든다.

문화와 예술을 보고 들었을 때 느끼는 감상은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모든 사람에게서 다르게 나타난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전해들은 정보는

네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오히려 방해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태교부터 영어를 시작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 중국어를 비롯한 제 2 외국어를 익히는 등

언어에 대한 과도한 학구열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렇게 언어를 중시하는 현상은 외국어가 유창할 때

통역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 이외에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분명 얻는 이득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팔에서 산다면, 네팔에서 사업을 가꾸고 또 가족을 부양할 생각이라면.

배움에는 끝이 없다.

지금 당장이라도 네팔어를 시작하는 것이

앞으로의 네팔 생활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