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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유학생 시절

베이징에 홍수 나던 날. 20120721

아마 그 전날부터 이상하게 비가 많이 왔던 거 같다.

 

학교 들어오는 길에 물이 고여 자전거 미끄러질까봐 간신히 들어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날 알바가 있어서 지춘루까지 갔어야 했는데,

 

어떻게 갈까 하다가 비가 오니까 그냥 자전거는 세워두고 버스타고 나가기로 했다.

 

그날 한 선택 중 이게 제일 잘 한 선택이었다.

 

 

알바 하러 출발할 때에는 물이 요정도 고여 있었다.

 

많이 오기는 했지만, 그냥 슬리퍼 신고 다니면 다닐만한 정도?

 

자전거는 좀 힘들지만 차나 오토바이는 그래도 다닐만한 정도?

 

난 왜 비가 곧 멎을거라 생각했던 걸까;

 

그리고 번역 알바하러 가서 겁나 타이핑을 쳐 주고,

 

3시간 알바하고 한국돈 3만 6천원(중국돈으로 200위안 받았었나...) 받고

 

지춘루에서 오도구역으로 와서 지하철을 내리는 순간

 

 

내 눈앞에는 이런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베이징 생활 6년만에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저 앞에 버스를 탔어야 했는데 얘가 물 때문에 문을 못 열고 그냥 갔다.

 

그리고 그 버스는 영영 다시 오지 않았다.

 

저 오토바이 배기관에 물 들어가서 섰다.

 

중국 애들 앞에서 사진찍고 난리가 났다 자기들끼리.

 

 

우와 도로 한복판에서 막 파도가 친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멍때리고 있는데 뒤에 있던 가게 직원이

 

비 피해 가라고 날 불렀다.

 

가게로 들어가면서 문턱에 걸려 자빠지는 바람에 옷이 다 젖었다.

 

30분을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고 난 멘붕이 오고 배는 고프고

 

어차피 집에 가서 밥 하기 귀찮을 거 같아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 생각 나만 한 게 아니었구나.

 

2층에 있는 햄버거집 LUSH는 비 피하러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

 

와이파이는 이미 안 터지고 전화도 잘 안 터지고

 

우영이한테 데리러 오라고 할라다가

 

금마가 오도구 사거리로 들어오는 것 조차 쉽지 않을 거 같아 포기했다.

 

햄버거 먹고 멍 때리도록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고.

 

 

창밖으로는 호수가 돼 버린 사거리에 버스가 헤엄치고 있다.

 

결국 다 포기하고 저 물을 헤치고 걸어 들어왔다.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 자전거 타고 20분 거리를

 

버스 기다리고 어쩌고 저쩌고 3시간 걸려서 집에 오니 밤 9시.

 

입었던 옷은 그대로 허물벗듯이 벗어서 화장실에서 싹 빨았다.

 

그래도 서양 애들은 좋다고 자기들끼리 맥주마시고 쇼를 하더라.

 

나중에 뉴스 보니까 베이징에서만 36명이 사망하고 100억 위안의 피해를 낸

 

역사상 최악의 홍수였다 카더라.

 

난 겁내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있었던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