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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놀기

연세대학교 이한열 열사 기념전시회 참관 20160617

오랜만의 쉬는 날


오랜만에 원피스 입고 힐 신는 날.


연세대에서 열리는 이한열열사 기념관이 가고 싶어서


 신촌으로 고고씽.



신촌역에 도착했더니


프랑스 문화제를 하고 있었음.


점심 안 먹었는데 잘 됐다


소세지랑 새우 사먹었어요


좀 덥긴 하지만 뭐 흥겨운 분위기


몽실이 목걸이도 하나 샀어요


연세대 정문 앞으로 갑니다


여기서 영어 배우던 게 2007년 일이니 벌써 10년이 흘렀어요


연세대도 엄청 변했네요


그때 같이 공부하던 우리 둘째오빠는


어느덧 7살짜리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지요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있는 건물


10주년 기념관에서 이한열 30주기 기념 전시를 합니다


입구에서 방명록 받는 분이 계시고


단체로 온 듯한 관람객 일행이 있습니다


전시회 제목은 2017이 1987에게



시간별로 그때의 사진들과


관련 물품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때 이한열 열사의 나이는 21세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


그때의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던 우상호는


30년의 시간이 지나 민주당의 원내대표가 되었다


그때 당시 사용하던 화염병과 안전모 등


그때만 해도 시위장에서 사람이 죽어나간 건 드문 일은 아니었다


결국 이분들의 희생으로 지금의 우리가 있고


폭력이 없는 2017년의 촛불집회가 있었다


어쩌면 대한민국 민주화의 마무리는


30년의 시간이 흘러 2017년에도 계속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관련 문구와 문학, 미술작품,


그리고 유품 등도 같이 전시되어 있고


이한열 열사의 어릴적 사진이라던지


가슴이 찡해지는 부분이 많다.


과거의 연세대에서 전화가 와서,


우리는 오늘 죽고 끌려가지만, 30년 뒤의 세상은 좋아졌겠지요?


전두환 노태우는 지금 뭐 하고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2014년.


이한열 열사의 사진을 기반으로 만든


세월호 사건의 풍자화.


대한민국의 시간은 아직도 흘러가고 있다.



그때에는 인쇄술이 지금처럼 좋지도 않아서


이렇게 목판으로 찍거나 거친 종이에 인쇄하고,


MP3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니


노동요나 민중가요를 테이프에 녹음해서 뿌리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30년이 지나서


배가 가라앉고


농민이 정권에 의해 사망했으며


사망진단서는 다시 조작되었다.



연세대 각 학과별로 이한열의 시신을 지키려 모였던


세브란스 병원의 경비 일정.


학생들이 자리를 비운 저녁 시간대에 이한열 열사가 사망하고


시신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 내려오자


병원을 지키던 의대, 간호대, 의사 간호사들이 뛰어내려와


스크럽을 짜고 시신을 지켜냈다.


아니 ㅅㅂ 시신을 압수한다는 건 도대체 어느색히 대가리에서 나온 생각이여


행동하는 양심으로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


혈기 왕성한 대학생의 치기 어린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후로 대한민국은, 분명 조금이라도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그때 시위에 참여했던


그 모든 학생들, 지금은 중년이 되었을 그 분들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