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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5주 여행

다시 시작 - 여행에 대한 추억

우리 부모님은 "여행은 곧 교육이다"라는 생각으로 나를 가르치셨다.


처음 해외여행을 갔던 게 94년도에 괌이고,


96년도에 일본을, 97년도에 중국을 처음 갔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여행이나 해외 생활에 크게 거부감이 없는지도 모른다.



<추억, 하나>


97년도 처음 중국에 가서 삼촌 집에 머무르던 때


셋째 주 일정은 연변으로 가서 백두산을 보는 거였다.


지금이야 중국 통해서 백두산 아무나 간다지만


그때는 낙석이 막 떨어질 정도로 험한 산이었다.


그리고 난 그 다음날 앓아 누웠다;;



우리 가족만 타기로 얘기가 돼 있던 봉고차에


운전기사가 자기 마음대로 자기 가족들을 태우고 같이 백두산으로 갔다


그때만 해도 연변에서 왕복 8시간이 걸리는 길이었다.


할아버지는 말 없이 그 사람들의 식사도 지불하고,


차 안에서 기본으로 들어가는 물값 음료수값도 냈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서 호텔로 돌아왔을 때, 그제서야 운전기사를 불러서


엄중하게 다신 이러지 말라고, 가족을 데리고 가고 싶으면 미리 얘기를 하라고


호되게 꾸짖었다.


운전기사도 그제서야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말에 할아버지는 두말 않고 그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처음부터 데리고 가지 않았으면 됐을텐데,


그래도 오랜만에 나들이를 하는 가족을 망치고 싶지는 않으셨나 보다.


지금은 돌아가셨고, 돌아가시기 전에 오랜 시간 치매로 고생하셨지만


그날의 꼿꼿했던 외조부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우리 조부모님 세대만 해도 해외여행이란 건 그렇게 쉽지 않았다.


지금은 하늘에 계시지만, 늘 당당하고 다정했던 내 외조부모님.



<추억, 둘>


2002년 온 가족이 태국으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였다.


푸켓의 원숭이 사원을 가는 날인데 비가 왔다.


비 때문에 사원에 도착했을 때 원숭이를 제외한 영장류는 우리 가족밖에 없었고,


원숭이들은 이때가 기회라고 우리에게 덤벼들기 시작했다.


먹이로 주려고 미리 사갔던 바나나는 물론이고,


차 안에 먹다 남은 프링글스 감자칩부터


내 손가방에 굴러다니던 M&M 초콜렛까지


말 그대로 모든걸 다 탈탈 털렸다.


심지어는 반쯤 남은 주스병도 털렸다.


푸켓의 원숭이 사원에는 원숭이가 500마리가 있습니다.


정말 예쁜 아기 원숭이가 있었는데, 먹이를 주려고 가까이 갔더니


덩치 큰 원숭이에게 얻어맞고 먹을걸 빼앗겼다.


그때는 양육강식 동물의 세계를 알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고,


그 원숭이를 집에 데려가서 뭘 먹이고 싶다는 생각만 계속 했다.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새끼들은 귀엽고 원숭이들은 사람들을 잘 털어간다.


 

<추억, 셋>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06년,


처음 혼자서 서안으로 여행을 갔다.


두번째 날 밤, 중국 여행 동호회에 올려놓은 내 전화번호로


다급하게 한국인이 전화를 했다.


기차가 연착되어 오밤중에 도착해서 버스는 없고 중국어는 못한다면서.


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다시 옷을 갈아입고 서안 기차역으로 나섰다.


그래서 이틀동안 같이 여행을 다니고,


언니는 쿤밍으로, 자는 베이징으로 돌아와서


한동안 둘이 메일을 주고 받았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언니는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추억, 넷>


2007년, 처음 NGO에 입사하여 베트남으로 자원봉사를 갔을 때.


우리가 봉사하던 곳은 하노이 외곽의 한 고아원 겸 양로원이었는데,


그때가 명절이라 고아나 노인분들도 친척집이나 어디로 명절을 쇠러 가고


정말로 갈데 없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만 10명 남짓 남아있었다.


 일행 중 나만 담배를 피웠는데,


양로원에 계신 할머니가 그걸 볼 때마다 그렇게 뭐라고 했다.


나중에는 사탕을 하나 주면서 대충 이거 먹고 담배 피지 말라는


(왜냐면 나는 베트남어를 단 한 마디도 못했거든)


한국에 돌아갈때도 손을 꼭 잡고


꼭 좋은 남자에게 시집가라며.


할머니는 한쪽 팔이 없었다.


월남전때 한국군이 쏜 총에 맞아서 잘랐다고 했다.



<추억, 다섯>


미얀마 바간에서 방을 못 구해 돌아다니고 있는데,


한 숙소 앞에 주인이 나와서 앉아있었다.


자기 숙소 트윈 룸에 한 사람이 빠지고 한명만 남는데,


그 사람이 한국인이라며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한국인 남자였고, 성이 문씨였다는 것 까지는 생각난다.


6일을 한 방을 썼는데 이름도 모른다;


같이 아침을 먹고, 알아서 각자 구경을 하다가 저녁때 시간 맞으면


저녁을 같이 먹고 안 맞으면 방에 들어와 자는 그런 6일이었다.


나는 노트북을 들고 다니지 않는데, 자기 노트북에 영화가 많다면서


필요한건 보라고 해서 내 핸드폰으로 옮겨 놓은게 '아비정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난 장국영의 광팬이다)


덕분에 20불은 써야 했던 숙박비가 12불로 줄었다.


6일 뒤 그 사람은 양곤으로, 나는 만달레이로 떠났다.


이름도 모르는 채 만나서 시간을 보내고 또 쿨하게 헤어지고


헤어짐에 의미를 두면 여행은 할 수가 없다




뭔가 대단한 기억들이 있는 추억들이 아니라


그때그때 만났던 사람들, 장소들, 동물들에 대한 기억이다.


크게 재미있지도 않고 뭔가 대단하지도 않지만


그냥 아, 그때 그런 적이 있었지 라고 생각하게 된다.


뭔가 내가 눈물 쪽 뺄만큼 어마어마한걸 느낀 것도 아니다.


단지 이런 경험을 하고, 뭔가를 보고,


거대하지는 않지만 뭔가를 느끼고,


보기만 하던 곳에 내가 왔다, 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그게 추억이 된다.



그리고, 머잖아 다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나 바다보러 갈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