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루키의 굴욕
우리 루키는 2000년생 밀레니엄 돌이.
올해로 방년 16세. 강아지로 치면 완전 노령견.
지금 중학교 3학년인 사촌막내동생과 동갑.
재작년부터 폐에 물이 차는 병이 생겨서
계속 기침하고 매일같이 약 먹는 중.
상전중에 상전.
보라 이 방대한 콧구멍.
나이가 많고 병이 있다 보니 미용실에서 안 받아줌.
사고나면 책임질 수 없다 함.
스트레스 받으면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다 함.
하지만 날은 점점 더워지고 얘도 덥고 나도 덥고
이놈새키 털을 뿜뿜하는데다 내 방이 지 방인줄 알고 있어
내 방에는 털이 덩어리져 굴러다닌다.
청소기 돌려봐야 한나절이다.
그래서 털을 집에서 밀기로 결정.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구나....
바리깡과 루키가 지나간 자리.
더군다나 루키는 바리깡을 싫어하고
누가 자기 뒷다리 만지는 건 더더욱 싫어한다.
....최신유행 걸레컷....
애가 걸레가 됐네.....
심지어는 반만 밀림. 왼쪽만 밀림.
예전에 전두환이 남자들 두발 단속 할 적에
경찰한테 걸려서 밀리면 이렇게 밀렸을랑가.
일단 이대로 둘 수가 없어서
죽이되든 밥이되든 나머지 오른쪽도 밀기로 결정.
사실 정말 밀어야 하는 곳은 다리랑 발바닥인데
그쪽은 손도 못대게 날뛴다.
완성샷.
일단 밀고 다시 보호대 끼워서 한번 더 밀었더니
그래도 눈 뜨고 봐 줄 정도는 되심.
데리고 나갔더니 동네 사람들은 그래도 예쁘단다.
....고마워요 예뻐해줘서ㅠㅠㅠㅠ......
삐짐.
단디 삐짐.
책상 밑에 들어갔다는 건 정말 삐졌다는 말임.
미안해ㅠㅠ 니 털이 이렇게 숱이 많을 줄 몰랐어
새옷 하나 사줄게
그거 금방 자랄거야
그래도 덕분에 방을 굴러다니던 개털뭉치는 사라졌다.
잘땐 천사.
코카라서 안고 잘 때 싸이즈 딱임.
그나마라도 벗겨서 덜 더운지
잘때는 나랑 같이 자려고 한다.
그리고 저 털 치우느라 난 한번 더 난리를 치렀다.
사랑하는 내 새끼.
이미 반이나 지나간 올해 그냥 보내버리고
내년 새해도 누나랑 같이 맞자.